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르세 미술관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특이한 것은 [[사진]]도 [[예술]]로 [[인정]], 컬렉션에 포함시켰다는 건데 이 결정을 꽤 이른 시기에 했다. [[1970년대]]에 프랑스에는 사진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없었는데, '''최초로 오르세 미술관이 사진을 전시물에 포함시켰다.''' 소장하고 있는 사진 작품만 해도 4만 5천 장이라고 한다. 이들 사진들도 [[19세기]] 중반에서 [[20세기]] 초반의 작품들인데, 이 시기는 사진의 경우 초창기에 해당된다. 사진 기술이 열악할 때 찍힌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이야기. 이 사진의 등장이 이 미술관이 주제로 삼고 있는 인상파가 나오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꽤 아이러니한 부분이기도 하다.[* 이전까지의 미술은 사실성을 중시했는데, 있는 것을 그대로 찍어버리는 사진의 등장은 미술계에 큰 영향을 주었고, 19세기 중반부터의 미술은 사실성을 중시하기 보다는 작가의 표현과 독특한 예술관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발전하게 되었다.] [[건축]] 예술 부분도 다루고 있는데, 19세기 중반~20세기 초반에 해당되는 각종 건축물의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. 특히 [[파리 오페라 하우스|파리 오페라 극장(오페라 가르니에)]]의 설계와 건축 모형은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. 그리고 미술관 건물 자체도 예술이다. 원래 오르세 미술관 건물은 미술관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, [[기차역]](Gare d'Orsay)과 [[호텔]]로 지어진 건물이었다.[* 이때는 아직 항공 교통이 발전하지 못했던 때라서 초장거리 운송은 철도와 선박이 담당하고 있었다. 이 때문에 터미널역에서 열차나 선박으로 환승하기 위해 하룻밤 머무는 승객들이 많았고, 역에다 호텔을 세트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.] [[1900년]] 세계 박람회의 수요를 노리고 지은 건물로, 오를레앙 철도회사의 터미널역이었다. 이 건물을 건축한 사람은 [[빅토르 라루]]. 당시 기준으로서는 대단히 현대적인 건축물로, 그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여러 시설이 들어차 있었다. 그러나 오르세역은 승강장 길이가 짧았고, 철도가 발전하면서 차량의 길이가 길어지고 연결되는 차량 수도 많아지자 한계에 다 다랐다. 이에 [[1939년]]에 장거리 열차의 운행을 중지, 근거리를 운행하는 로컬 열차만 운행하는 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. 그나마도 이용객이 줄면서 폐지되었고, [[1973년]]에는 [[호텔]]마저 운영을 중지하면서 폐역이 되어 버렸다. 그리고 [[1978년]]부터 역 건물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을 시작했고, [[1986년]]에 미술관으로 재개장했다. 오르세역을 폐역시킨 [[RER C선]]은 [[1979년]]에 영업을 시작했고, [[오르세 미술관역]]이 오르세역을 대체하게 되었다. 그리고 훗날 [[서울역]]이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된다.[* 정확히 말하면 서울역은 추후 [[수색-광명 고속철도|경부고속선 서울 시내 구간]] 건설에 따라 [[경부고속철도|경부선 KTX]]와 [[호남고속철도|호남선 KTX]]는 지하의 경부고속선 전용 플랫폼으로 이전하고, [[강릉선 KTX]]는 [[수도권 광역급행철도 B노선|GTX-B]] 노선과 공용하는 지하 플랫폼으로 이전할 계획이다. 다만, [[ITX-새마을]], [[무궁화호]]는 현재의 지상 플랫폼에서 계속 운영할 예정이라 오르세 역과는 다른 경우이긴 하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